형태 | 활동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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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 2019-03-22 10:56:40 | 조회수 | 211 |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양은 식사 시간만 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늘 점심땐 뭘 먹지 ’ ‘오늘은 무슨 요리가 나올까 ’ 같은 고민 때문이 아니다. 음식 안에 어떤 재료와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A양은 ‘식품 알레르기’ 질환이 있다. 특히 ‘견과류’에 민감해 견과류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입술이 붓고 가려움증이 발생한다. 심할 땐 구토 증세와 동반해 기도가 부어오르기까지 한다.
◆ “급식 먹다 구토 증세 나타나고 기도 부풀어 올라…”
A양의 학교 급식은 비교적 식품 표기가 잘 돼 있는 편이라고 한다. 급식표 하단에 각 성분별로 고유 번호를 매겨 메뉴 옆에 적어놓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얼마 전 A양은 급식을 먹다가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겪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기도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A양은 조퇴를 한 뒤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영양사 선생님으로부터 점심에 나온 ‘수수부꾸미’에 견과류가 섞여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외부에서 만들어 들어오는 음식의 경우에는 식품 성분을 자세하게까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A양은 “외부에서 만들어 들어오는 가공 제품에도 반드시 성분 표기가 완벽하게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순히 마트에서 사는 포장된 음식 말고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음식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며 “나처럼 음식을 잘못 먹어 매우 위험한 상태까지 이르는 환자들이 아주 많다. 식품 알레르기 환자는 물론, 환자가 아닌 다른 소비자들도 음식에 들어간 성분이나 재료를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일 혹여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음식이 들어갔을까 마음 졸이는 모든 식품 알레르기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식품 알레르기 표기법’이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A양은 이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 식당 갈 때마다 ‘유난 떤다’는 말 들어… 음식 성분, 주방장이 모르는 경우도 비일비재
갑각류 알레르기를 겪고 있는 B씨는 밖에서 음식을 사 먹을 때마다 음식에 새우나 게가 들어가 있는지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B씨는 눈치 아닌 눈치를 살피게 된다고 한다. 그는 “애초에 메뉴판 같은데 어떤 재료가 들어가 있는지를 표기해 주면 번거롭게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며 “알레르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종종 ‘왜 이렇게 유난을 떠냐’ ‘다 큰 어른이 아직도 편식을 하냐’ ‘까탈스럽게 굴지 말라’면서 핀잔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사람에게는 ‘그깟 알레르기’일지 몰라도 누군가에는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에선 아직 알레르기 유발 성분을 제대로 표기하지 않은 제품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식당에서도 음식의 재료와 성분을 표기 한 메뉴판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 보니 식품 알레르기 환자들은 어느 음식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 일일이 식당 직원과 주방장에게 물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주방장조차 모르는 일도 허다하다. 반면 유럽연합(EU)·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대부분의 식당 메뉴판에 어떤 식재료가 들어가 있는지 최소한의 표기는 하고 있다.
EU·미국 등에서는 알레르기 유발 물질 혼입 가능성에 대해 주의·환기 표시를 강제하고 있지는 않으나, 원재료 표시란에 기재돼 있지 않은 성분이 검출될 경우 제조업체의 원재료·완제품 관리 책임을 물어 회수조치를 적극 실시하고 있다. 또 EU 등은 표시 대상 원재료의 명칭이 나머지 원재료와 구분되도록 활자 크기, 글자체, 배경색을 달리하도록 하고 있다. 표시 대상 품목도 우리나라는 게·새우처럼 단위 품목별로 정하는 데 반해, EU·미국·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갑각류·조개류와 같이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순 단위 품목별로 표기 의무가 이뤄지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표기의무 대상이 상대적으로 많은 셈이다.
◆ 호흡곤란, 두드러기까지… 늘어나는 식품 알레르기 환자, 구체적 방침은
식품 알레르기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점점 느는 추세다. 식품 알레르기는 계란·우유·밀·땅콩·견과류·생선·조개류·키위 등 식품에 주로 반응을 보인다. 지난 3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잣을 원료로 사용해서 만든 식품도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포장지에 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미 만들어놓은 포장지 폐기에 따르는 환경오염 우려와 식품제조업계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2020년 1월1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잣의 추가로 알레르기 유발 물질 표시 대상은 난류·우유·메밀·땅콩·대두·밀·고등어·게·새우·돼지고기·복숭아·토마토·아황산류·호두·닭고기·쇠고기·오징어·조개류 등 현재 21개에서 총 22개로 늘어난다.
식품 알레르기는 특히 소아·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반적인 증세로는 복토·구토·설사 등의 위장 증세가 많지만, 두드러기·천식·편두통·비염, 때로는 쇼크 증세 등을 일으키는 일도 있다. 음식물을 섭취한 후 바로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 많으며, 수 시간 후,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 날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심각할 경우에는 알레르기성 쇼크의 일종인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나타나 호흡이 어렵고 혈압이 떨어지기도 한다. 신속하게 조치하지 않으면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는 질환이다.
정경욱(아주의대 소아청소년과)·김지현(성균관대 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팀이 2014년 9월부터 2015년 8월까지 국내 상급종합병원에서 음식 알레르기로 치료받은 0∼18세 1353명의 의무 기록을 검토한 결과를 보면, 이들에게 나타난 전체 1661건의 식품 알레르기 가운데 30.5%(506건)가 아나필락시스로 이어졌다. 이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며 그 수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탤런트 구혜선씨 역시 아나필락시스 진단을 받고 드라마에서 하차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식품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불가피하게 혼입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의무적으로 주의 환기 표시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표시가 소비자에게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형편이다. 특정 제품에 어떤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들어가 있다고 명확하게 표기하는 것이 아니라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제품과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같은 제조과정에서 생산해 불가피하게 섞여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소극적인 표시도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 입장에서 다소 헷갈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업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에 한국소비자원은 식품 알레르기 질환자 및 보호자에게 ▲제품 구입 시 알레르기 유발 물질 포함 여부를 꼼꼼히 확인할 것, 식품의약품안전처에는 ▲주의·환기 표시 폐지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방법 개선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