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그래서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뿐 아니라 기업들과 대학 등도 공보 또는 홍보부서를 별도로 두고 언론홍보와 언론대응을 한다. 언론은 사건사고 보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오락 등 모든 분야에 대해 보도를 한다. 최근에는 경제수준이 향상되고 수명도 늘어나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면서 환경보건 문제에 대한 보도 횟수나 양이 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안전한 먹거리와 건강보조식품, 식품첨가물 등 식품안전에 관한 것과 석면, 새집증후군, 아토피, 발암물질 등 환경보건 이슈들에 대한 보도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신문·방송에 보도됐다고 해서 독자나 시청자들이 물론 이를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이데올로기나 정치적인 견해가 포함된 보도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나 의학적인 문제에 관한 보도는 다른 부문 보도에 견줘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과학과 의학이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는 환경문제를 언론이 잘못 다루거나 과장·왜곡해 다룰 경우 시민들이 환경보건 문제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다시 말해 시민들이 정확한 위험 인지를 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위험에 대해서는 소홀하고 별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거나 위험을 느낄 필요가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 수 있다. 이는 그 개인은 물론 사회에도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친다. 다시 말해 정부나 사회가 제대로 된 위해 관리 정책을 펴거나 정책 대상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여성들이 예쁘게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멋있는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해 남에게 호감을 주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다른 신문이나 방송보다 더 돋보이려 하고 더 많은 부수를 기록하고 시청률을 높이려 애쓴다. 여기에 상업성이 작용한다. 흔히들 정론지나 공정방송 따위의 말을 입에 올린다. 이는 역설적으로 정론을 펼치는 신문을 찾아보기 어렵고 불공정 방송이 여전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우리 언론은 상업성이 강하다. 거의 모든 신문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생존을 위해, 즉 경영을 위해 과장보도, 추측보도, 왜곡보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상업성은 우리나라 언론 고유의 속성은 아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상업성을 지닌 언론이 얼마든지 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선정적인 기사와 사진을 내보내거나 낯 뜨거운 장면을 다루는 방송도 많다. 살 파먹는 박테리아(항생제내성균), 프랑켄 푸드(유전자재조합식품), 광우병(소해면상뇌증) 등의 공포를 자아내는 과장된 표현을 만들어 널리 퍼트린 것은 모두 영국 언론의 자랑스러운 업적( )이다.
신문·방송은 언론인이 만든다. 이 언론인도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어서 더 많은 보수를 받고 싶어 하며 승진하고 싶어 한다. 그는 특종도 하고 싶고 자신이 쓴 기사를 회사 간부가 크게 키워 눈에 띄게 다루어주기를 바란다. 흔히 요즘 유행하는 말로 ‘섹시한’ 제목이나 헤드라인을 달아 신문과 방송에 나가도록 바란다. 이를 위해서 ‘센 주먹’이란 표현보다는 ‘핵주먹’이란 말을 만들어낸다. 소해면상뇌증(BSE,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보다는 광우병(Mad Cow Disease)이란 말이 더 시민들에게 쉽게 다가간다. 단어나 용어, 그리고 표현이 어려우면 독자들이 잘 읽지 않고 시청자들이 보거나 들은 뒤에도 머리에 잘 각인되지 않는다. 광우병이란 표현이나 마이크 타이슨에게 핵주먹이란 이름을, 선동열에게 무등산 폭격기란 별명을 붙인 사람은 모두 언론인들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을 남이 확실히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센(강한) 말, 즉 된소리가 나는 말을 쓰는 경향이 있다. 소주보다는 쏘주(쐐주)가,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사인보다는 싸인이란 말이 왠지 더 친숙하다. 언론인이라고 해서 결코 모범적이고, 사실에만 충실하게 기사를 쓰는 것은 아니다. 자기 기사가 다른 동료가 쓴 기사보다 더 크게 취급받기 위해서 좀 과장하는 것 정도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정말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공기 중 석면 농도나 농산물 중 잔류농약에 대해서도 ‘범벅’, ‘투성이’란 어마어마한 단어를 들이댄다.
우리가 정한 공기 중 또는 먹는 물 또는 토양 중 유해물질 농도는 안전기준도 있고 관리기준도 있다. 안전기준이라 할지라도 기준치를 조금이라도 넘어서면 우리 환경이나 인체에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런 안전기준을 웃도는 유해물질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이년도 아니고 몇 십 년간 계속해서 우리 몸속에 들어온다면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런 기준치를 정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기준치를 넘어서는 유해물질이 검출됐을 경우 판매를 금지하거나 문제가 된 제품이나 농산물의 제조공장과 재배지를 점검해 그 원인을 찾아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방송은 환경문제 또는 환경보건 문제를 다룰 때, 뉴스의 경우 1분 30초란 매우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큰 이슈의 경우 두세 꼭지 또는 서너 꼭지에 걸쳐 그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하지만 신문이나 잡지에 견줘서는 여전히 심층성이 떨어진다. 물론 60분씩 하는 방송의 심층프로그램은 예외임) 보도 내용 못지않게 영상에 신경을 쓴다. 영상은 시청자들에게 매우 감성적으로 전달된다. 만약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을 장시간 시청자들이 본다면 그 각인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그래서 일부 방송에서는 보도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자극적인 장면이나 과거 찍었던 장면을 마치 현재 방송되는 내용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처럼 해 내보낸다.
이 모든 일들이 시청률을 더 높이고 시청자의 채널을 고정시키기 위해 벌어진다. 신문의 경우 판매 부수를 늘리고 독자들의 열독률을 높이기 위해 일어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거들떠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훌륭한 요리사는 눈으로, 냄새로, 모양으로 음식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신문사(방송사)에도 제목(헤드라인)을 전문적으로 뽑는 기자가 따로 있다. 이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독자들의 눈길을 확 끌 수 있는 단어나 표현이 없을까만 궁리한다. 그래서 기자들은 취재기자, 편집기자, 데스크 할 것 없이 과장에 익숙해 있다. 기자 사회에서는 이를 초친다고 한다.
국내 환경보건 보도와 관련해 전설적인 표현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공업용 우지라면’과 ‘쓰레기 만두’ ‘고름 우유’ 등이다. 그리고 때론 보도를 아직 시민들이 접하지도 않았음에도 ‘충격’ ‘공포’ 등의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기사를 쓸 시점에는 아직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시민들이 충격에 빠지고 공포에 떨 수 있을까 언론인들이 쓴 기사 내용과 달리 충격과 공포에 빠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 여러 이야기를 에둘러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환경보건 문제를 포함해 언론의 보도를 글과 소리 그대로, 표현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언론의 상업성과 과다 경쟁 속성을 이해했다면 과장되거나 왜곡된 보도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소가 풀이나 여물을 먹은 뒤 여러 위를 거치며 되새김질 하듯이 신문·방송에 보도된 것을 여러 매체를 비교분석해보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교해보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