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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납 노출과 건강영향 : 끝나지 않은 이야기

구분 :
칼럼
작성일 :
2012-01-26 17:27:04
조회수 :
2,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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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환경이야기-1

  

납 노출과 건강영향 : 끝나지 않은 이야기

 

환경보건정책에 있어 20세기에 이룬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가 납이 들어있는 유연휘발유의 사용을 금지한 것이라 하겠다. 이로 인해 미국의 경우, 평균 혈중 납 농도는 1976년 160㎍/L(1리터 당 160 마이크로그램) 이던 것이 2000년 16㎍/L로 10배가량 낮아졌고, 그에 따른 납과 관련된 많은 질병을 예방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면 현재의 납 노출 수준을 감안할 때, 납이 이제 더 이상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중금속이 아닌 것인가  환경 중 납 농도 감소와 더불어 그 위험성이 줄어든 것은 분명하나, 답은 여전히 건강을 위협하는 중금속이라는 것이다. 이는 납의 생체 내 잔류 특성과 노출 시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납은 체내에 들어오면 수일에서 수 주 동안 혈관을 돌다가 일부는 소변 등을 통해 체외로 빠져나가고 일부는 뼈에 남게 된다. 뼈에 축적된 납은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 동안 머물면서 조금씩 혈액으로 빠져나오고, 폐경이나 노화 등으로 뼈가 약해지는 시기가 되면 이보다 많은 양이 빠져나온다. 납은 뼈 속에 있을 때는 큰 독성이 없지만, 일단 혈액 내로 나오면 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 즉, 현재 납 노출이 거의 없다 하더라도 과거에 노출되었다면 납은 뼈 속에 숨어있다가 폐경이나 노화가 시작되는 장년 또는 노년이 되었을 때 혈중으로 나와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혈중 납’의 측정값은 최근 한 달여간 노출되었던 납의 양을 나타낸다. 따라서 현재 측정된 혈중 납은 그 사람이 과거부터(특히 유연휘발유가 사용되던 오래 전부터) 현재까지 어느 정도 노출되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최근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오랜 기간 동안 노출된 ‘누적 노출 정도’를 어느 정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혈액 대신에 뼈 속의 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측정된 ‘누적 노출 정도’가 다양한 만성질환, 특히 고혈압, 인지능력 저하, 파킨슨 병, 노인성 백내장, 청력 손실 등 노인성 질환과 관련이 있는 것이 보고되기도 한다. 즉, 과거에 노출된 납이 현재의 건강상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진입하는 시점에서 향후 납 노출에 의한 건강영향,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 영향은 더욱 높아질 우려가 있다.

납의 건강영향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최근 몇몇 동물 연구 등을 통해 태아시기 또는 신생아시기에 납에 노출될 경우, 성장 후에 치매 관련 유전자의 발현이 납에 노출되지 않은 경우 보다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 보고되고 있다. 일종의 ‘후성유전학’으로 알려진 이론들에 따르면 노출량 뿐 아니라 노출시기, 특히 민감시기(임신기 또는 신생아 단계)의 환경노출이 이후 성인에서의 만성질환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가설들이 사실이라면 유연휘발유가 사용되었던 시기에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젠가는 납의 영향이 발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 시기의 노출을 기억하고 있는 유전자가 모두 발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건강한 삶을 유지할 때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줄이고, 운동을 꾸준하게 하며, 균형있는 영양섭취를 하는 등)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질환유발 유전자의 발현 확률이 낮아질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 특히 유연휘발유가 사용되어 대기중에 납 농도가 높았던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납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영향 정도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즉, 그 정도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결과에 의하면 칼슘과 마그네슘, 비타민 C와 베타 케로틴 등을 적게 섭취할수록,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성인병(고혈압이나 당뇨 등)을 가지고 있을수록 납의 영향 정도는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적절한 영양섭취와 건강한 삶이 납의 위험을 줄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성인에게 있어서 납의 건강영향은 과거보다 노출량이 줄어들면서 함께 낮아졌다. 하지만 납 노출에 따른 영향은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이유 등으로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어린시절에 이미 과거에 납 노출이 일어난 성인들에 대해서는 생활습관의 개선과 같은 건강증진 프로그램 등이 환경보건정책의 중요한 내용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노령화 사회로 변하면서 ‘건강한 노화(Healthy Aging)’의 중요성이 여기저기서 많이 거론되고 있다. 납의 영향을 이야기 하는 필자 역시 건강한 노화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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