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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좋은’ 화학물질과 ‘나쁜’ 화학물질

구분 :
칼럼
작성일 :
2018-07-20 09:42:12
조회수 :
9,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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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화학물질과 ‘나쁜’ 화학물질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놀란 우리 사회가 극단적인 ‘케모포비아’(chemophobia, 화학혐오증)에 빠져들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사용하는 ‘케미포비아’(chemiphobia)는 국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잘못된 표현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모든 ‘화학물질’을 거부하는 ‘노케미족’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정체를 이해할 수 없는 식품첨가물과 생활화학용품의 소비는 큰 폭으로 줄어들었고, 그 대신 천연·자연을 강조하는 제품의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천연 식품만 소비하고, 천연 재료로 직접 만든 화장품·비누·세제만 쓰겠다는 소비자도 많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화학물질을 싫어하는 이유

 

물론 모든 화학물질을 거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화학자의 입장에서 화학물질의 거부는 생존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소위 노케미족이 거부하는 ‘화학물질’은 화학자들의 인식과 다르다. 노케미족이 말하는 ‘화학물질’은 사실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진 ‘합성’ 화학물질을 말한다. ‘합성’ 물질은 인체에 위험하고, ‘천연’ 물질은 인체에 도움이 된다는 대단히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합성과 천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98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로알드 호프만이 지적했듯이 우리가 ‘천연’을 좋아하는 이유는 복잡하다. 남들보다 더 ‘좋은’ 것과 더 ‘비싼’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우리의 본성과도 관계가 있다. 대량으로 값 싸게 생산되는 ‘합성’ 제품보다 생산량이 적고,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천연’을 좋아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자연에 대한 왜곡된 우리의 인식도 문제가 된다. 자연의 모든 것이 우리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은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특히 자연 생태계를 구성하는 식물·동물·미생물은 스스로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을 위해 복잡한 천연물질을 합성해주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혼란을 부추기는 전문가들

 

실제로 화학물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화학과 관련된 전문가들이다. 특히 식품과학·의약학·독성학·환경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렇다. 많은 전문가들이 화학물질의 인체 효능과 독성에 대해 극단적인 이분법적 구분을 강조한다. 우리의 건강에 좋은 화학물질이 따로 있고,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는 화학물질이 따로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전문가들의 이분법적 주장이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면서 몸에 좋다는 화학물질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고, 독성이 있다는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거부감과 혐오증이 나타나게 된다.

식품에 들어있는 일부 화학 성분들의 효능에 대한 과장된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부에 들어있는 ‘레시틴’은 ‘어린이의 두뇌 발육에 좋고’, 바지락에 풍부하게 들어있다는 ‘베타인’은 ‘베타인은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시켜 주고’, 양파의 ‘케르시틴’은 ‘체내의 니코틴 성분을 배출시켜 준다’는 주장이 엄청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알파 토코페롤, 폴리페놀, 오메가 지방산, 안토시아닌의 효능에 대한 찬사가 식품광고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정체를 분명하게 알 수 없는 항산화물질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암에 걸리고, 목숨을 잃어버릴 것처럼 야단들이다. 현미와 같은 거친 음식과 검은색 식품이 만병통치의 영약이라는 주장도 있다. 천일염에 들어있는 ‘미네랄’이 질병을 고쳐주는 치료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으로 정부로부터 엄청난 지원금을 챙겨간 식품과학자도 있다.

식품의 효능을 강조하는 제도도 마련되어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관리하고 있는 ‘건강기능식품’이 그런 경우다. 2003년에 제정된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은 건강 유지와 개선에 도움을 주는 ‘식품’이다. 우리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제도다.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2009년보다 54% 이상 늘어난 1조7920억이었다고 한다. 건강기능식품 산업계가 추정하는 실제 시장 규모는 4조를 넘는다고 한다.

문제는 식품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식품의 효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체를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친 실험이 필요하고, 그런 경우에도 효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작용이 지나칠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에서 나타나는 효능이나 질병이 우리가 섭취하는 식품의 특정 성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은 대부분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미국의 식품영양학자들이 콜레스테롤, 달걀, 커피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기존의 주장을 완전히 포기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소비자가 건강기능식품을 ‘의약품’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표시와 광고를 법률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동물실험의 한계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는 화학물질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 허용되기도 하는 식품의 경우와 달리 인체에 독성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인체 실험은 전 세계적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다양한 화학적·의학적 방법으로 상당한 수준의 치료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약 후보 물질에 대해서만 ‘임상실험’이라는 이름으로 극도로 제한적인 인체 실험이 허용될 뿐이다. 의약 후보 물질의 임상실험의 경우에도 모든 과정에서 정부와 사회단체로부터 엄격한 관리를 받아야만 한다.

결국 독성 화학물질의 독성을 확인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실험의 정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동물실험은 윤리적으로 절대 용납되지 않는 인체 실험의 대안일 뿐이다. 흰쥐·어류·개·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실험은 독성물질의 유해성을 추정하는 과학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독성 화학물질이 동물의 조직·기관·생리작용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결과로부터 인체에 미치는 독성과 후유증을 추정하는 일차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동물실험의 목표다.

동물실험이 인체에 나타난 독성 후유증의 원인을 파악하는 최종 수단일 수는 없다. 유해물질의 독성이 모든 생물에게 똑같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체에는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내는 독성물질이 다른 생물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인체에 치명적인 신경독성을 나타내는 테트로도톡신이 대표적인 예다. 결국 아무리 정교하고 철저하게 수행한 동물실험이라고 하더라도 임상적으로 확인된 결과를 넘어설 수는 없다는 것이 독성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특정 화학물질에 대해서 누구나 똑같은 독성을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복숭아·땅콩·게·새우·달걀·우유는 대부분 소비자에게 훌륭한 식품이다. 그런 식품의 독성을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런 식품 때문에 심각한 알레르기를 경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피부가 가렵고, 발진이 생기고, 호흡이 곤란해진다. 목숨을 잃어버릴 정도로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동물실험 자체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도 외면할 수 없다. 대부분의 동물실험은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기도 하고, 치명적인 질병이 발생하기도 한다.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동물을 해부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목적으로 동물실험이 끝난 후에 약물을 주입해서 안락사를 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동물실험을 통해 추정한 인체 독성이나 부작용 자료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가 불확실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동물실험을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인체를 대상으로 독성이나 부작용을 직접 확인하는 실험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물실험은 새로 개발된 의약품의 효능을 확인하거나, 식품·화장품·의약품의 독성·부작용을 확인하는 가장 일반적인 수단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포함한 생활용품이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을 확인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상품의 안전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동물실험의 수요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동물실험 조차 꼭 필요한 경우만 제한적으로 한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0여 년 전 처음 등장한 인권의 범위가 동물복지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장품 성분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동물실험을 제한하는 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비록 법제화에는 실패했지만 우리가 언제까지나 동물 복지를 강조하는 세계적인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동물복지를 위해 우리 자신의 생명이나 건강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동물실험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효능·독성은 사용법에 따라

 

화학물질을 우리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 ‘독(毒)도 잘 쓰면 약이 된다’는 옛말처럼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의약품은 대부분 맹독성 화학물질이다. 특히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하는 의약품의 경우가 그렇다. 상당한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의약품도 많다. 우리 사회에 어렵게 정착된 ‘의·약 분업’은 의약품의 부작용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노력의 산물이다.

우리 사회에 극단적인 케모포비아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정체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실 가습기 살균제는 화학적으로 엉터리 제품이었다. 당초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던 ‘세정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성분은 없었다. 초음파 가습기를 오염시키는 박테리아나 곰팡이를 제거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제품이었다. 살균 기능을 가진 화학물질을 장시간에 걸쳐 많은 양을 지속적으로 흡입하도록 만든 제조사의 살인적인 사용방법이 참사의 원인이었다.

자라를 보고 놀란 사람은 솥뚜껑을 보고도 놀라는 법이다. ‘가습기 살균제’라는 엉터리 제품의 살인적인 사용법에 놀란 소비자들이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했던 ‘보존제’ 성분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감을 갖게 된 것을 탓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보존제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 때문에 유통 과정에서 미생물에 의한 부패를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쉰내가 나는 물티슈에 의한 피해가 적절한 양의 보존제에 의한 피해보다 더 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설득시키는 일이 화학 전문가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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