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환경이야기-1
독극물이라도 노출되지 않으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
세상은 독극물이나 발암물질 등 유해물질로 넘쳐 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곳곳에 이런 물질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늘 위험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독성이 강하고 발암성이 강한 유해물질이라도 우리가 노출되지 않으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 아무리 독력이 강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있다 할지라도 노출되지 않으면 그 감염병에 걸리지 않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청산가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험실 안이나 화공약품 판매점 안에 있을 경우 우리는 전혀 위험을 느낄 필요가 없다. 또한 청산가리를 우리가 들이마시지만 않으면 된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경우도 어떤 놈은 호흡기로 들이 마시지 않으면 되고, 어떤 놈은 피나 성접촉과 같은 경로를 통해 노출되지 않으면 된다. 다시 말해 독극물이나 병원성 미생물에 노출되더라도 노출되는 방식에 따라 매우 위험할 수도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독극물(예를 들어 다이옥신이나 청산가리 등)이나 병원성 미생물(세균과 바이러스 등)은 미량에 노출되어도 문제가 되지만 어떤 것들은 상당한 양(감기바이러스, 저독성 또는 보통 독성의 농약)에 노출되는 경우 질병에 걸린다.
최근 철도청 역사 건물 안에서 석면 건축자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를 두고 어느 언론사가 전화를 해왔다. 어떤 경우에 위험하며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를 물어왔다. “석면건축자재 그 자체는 우리 생활공간 주변에 넘쳐나기 때문에 어디에 석면이 있더라도 그것을 당장 인체 건강과 관련 짓는 식의 뉴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매스컴에서 그런 식의 뉘앙스를 줄 수 있는 식으로 대문짝만하게, 또한 자주 다룰 경우 대중은 석면검출 그 자체를 두고 호들갑을 떨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우리는 종종 어린이 장난감에서 내분비계장애물질(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뉴스를 듣는다. 이런 이야기에 부모들은 그 장난감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장난감을 구입하지 않기 위해서일 터이다. 혹은 자신들이 그 장난감을 아이에게 사준 것이 아닐까 하고 불안해서일 것이다. 진짜 문제는 환경호르몬 검출 자체가 아니라 장난감에서 환경호르몬이 쉽게 어린이의 몸속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연구기관이나 시민단체, 소비자단체에서는 이런 조사를 할 때는 반드시 실제 노출이 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매스컴들도 마찬가지다. 장난감에 환경호르몬 물질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장난감 밖으로 용출되지 않으면 사실 위험하지는 않다. 또 설혹 녹아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사용조건과 같은 것이어야 하며, 용출된 것이 사용 또는 접촉하는 경로로 노출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장난감에 환경호르몬 물질이 사용되었고, 그 제품을 입으로 빨 경우 장난감에서 그 물질이 빠져나오고, 나오는 양이 문제가 될 만큼일 때 우리는 다른 대체물질을 사용한다든가, 환경호르몬 물질을 그 장난감에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든가 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은 빠는 습성이 강하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조건의 장난감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학자들이나 위해성 전문가들은 위해요인(hazard)과 위험(또는 위해, risk)을 확실히 구별해 말한다. 아무리 독성이 강하고 발암성이 강한 물질이라도 그 물질에 사람이 노출되지 않으면 위해성은 전혀 없거나 낮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강한 발암물질이라도 그 물질이 땅 속이나 바위 속에 있어 사람이 그 물질에 접촉이나 호흡 등을 통해 노출될 가능성이 없거나 희박하다면 위해(위험)를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래서 위험 전문가들은 ‘위해=위해요인×노출’이라는 간단한 위험공식을 만들어냈다.
최근 과천고 등 일부 학교 운동장에 친환경 자재로 여기고 사용한 감람석 자갈에서 석면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 서울대공원과 안동 하회마을에 사용한 조경석과 자갈에서도 석면이 검출됐다는 한 환경단체의 폭로에 따라 여러 매스컴이 이를 다룸으로써 일반 대중에게 알려졌다. 석면은 진폐증의 일종인 석면폐증을 일으키는 유해 광물섬유이며 폐암과 악성중피종 등 일부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석문전문가이며 위해소통 전문가인 필자의 견해로는 이 소식 가운데 운동장에 석면섬유가 미량이나마 일부 섞여 있는 감람석을 운동장에 사용한 것과 석면 띠가 보이는 조경석을 사용한 것은 위해성 측면에서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애초부터 석면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들을 사용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이지만 위해성 측면에서 보면 조경석의 경우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굳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 조경석 위에서 날카로운 칼 등으로 코를 들이댄 채 석면 띠 부위를 마구 긁어 미세한 석면섬유가 공기 중으로 날리게 해 다량으로 이를 들이마실 때이다. 반면 석면이 혼입된 감람석 자갈을 깐 운동장의 경우 학생들이 그 위에서 뛰어놀고 운동하면서 공기 중으로 석면먼지를 날리게 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될 경우 필히 호흡기를 통해 석면섬유를 들이마시게 되기 때문에 하루빨리 이를 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경우 종종 이런 옥석구분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어디서 무엇이 있더라고 하면 난리법석을 떤다. 그리고 나중에 흐지부지 되기도 한다. 마치 양치기와 늑대 우화를 보는 듯하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진짜 유해물질에 노출돼 인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까지 그냥 지나치게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석면이 되었건, 내분비계장애물질이 되었건, 병원성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되었건 모든 환경 유해물질을 다룰 때에는 그 물질의 독성과 함께 노출(더욱 정확하게는 인체에 영향을 직접 끼치는 경로를 통한 노출, 즉 호흡노출, 피부노출 또는 섭취 등)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 진짜 인체 위해성을 평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는 정부나 연구기관,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 언론, 국회의원, 전문가, 일반 대중 등 모두에게 해당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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