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물을 끓여서 마셔야 할까
대하소설 [토지]를 보면, 구한말 '호열자'가 하동 평사리 마을을 휩쓸어 윤씨 부인 등 수많은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악인 조준구는 식구들과 함께 최참판댁 뒤뜰에서 몰래 물을 끓여 먹고 호열자를 이겨 낸다. 이 호열자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병원균인 비브리오 콜레라가 물을 통해 일으키는 수인성 전염병이다.
수인성 전염병의 원인 미생물로는 비브리오 콜레라 외에도 장티푸스를 유발하는 살모넬라, 세균성 이질의 원인이 되는 쉬겔라, 그리고 노로바이러스, A형 간염바이러스와 같은 장관계 바이러스 등이 더 있다. 또한 90년대 들어 미국, 영국 등에서는 가축과 사람을 모두 감염시키는 크립토스포리디움 또는 지아디아와 같은 기생성 원충이 수돗물을 오염시켜 문제가 된 적도 있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먹는물과 관련해서 건강영향 정도가 큰 수인성 미생물 27종에 대해 주의 깊게 관리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처럼 유해한 수인성 병원균은, 일부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바로 그 병에 걸린사람이나 동물로부터 분변과 함께 배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적이 닿지 않는 곳을 찾기 힘든 현대사회에는 사람과 동물의 접근 또는 영향이 완전히 배제된 '천연의 안전한 물'을 찾가기 매우 어렵다. 고대로마에서는 천연의 안전한 물을 수십 km의 지하수와 수도교(water bridge)를 통해 로마로 운송한 후, 크고 작은 분수를 통해 계속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수질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물을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필요한 양만큼 충분하게 지속적으로 확보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는 적합한 먹는물 수질관리 방안은 양질의 상수원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함께, 상수원이 수인성 전염병의 원인 미생물에 의해 언제든지 오염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이를 상시 방어할 수 있는 정수시설을 갖추어 관리하는 것이다.
가장 전통적인 미생물 제거방법은 염소 소독제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염소소독에만 의존하지 않고 모든 정수단계(응집, 침전, 여과, 소독 등)마다 미생물 제거 효율을 최대한 높여서 염소에 강한 바이러스나 원충까지도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때 정수과정의 소독제 농도, 탁도 등과 같이 미생물 제거 여부를 나타내는 중요한 수질인자들은 연속적으로 측정되고 관리된다. 이러한 다단계 미생물 방어시스템을 '정수처리기준' 이라고 하는데, 1989년 미국에서 최초로 도입했고(Surface Water Treatment Rule),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에 서울특별시와 같은 대규모 도시의 대형 정수장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되다가 올해 7월부터는 전국 모든 정수정에서 실시되고 있다. 정수처리기준의 핵심은 병원성 미생물을 안전한 수준까지 제거하는 있는데 필요한 정수시설과 세부 운영기준을 미리 정해서 사전예방적으로 미생물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정수처리기준에 적합하도록 정수된 물이라면, 이제는 마시기 위해 더 이상 물을 끓일 필요는 없다. 반면에 휴가철에 찾아간 산속의 야영지 등에서 접할 수 있는 지하수나 약수물 등은 아무리 육안으로 깨끗하게 보여도 병원성 미생물 관리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라면 꼭 끓여먹기를 권하고 있다.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운 약수터 물은 먹는 물 수질기준에 미달하는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매년 그렇지만, 2009년의 경우 기준 미달된 약수터 물의 97.9%가 미생물 오염 때문이었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출처 : 웹진 "환경을 알면 건강이 보입니다. 제 8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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