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디젤배기가스를 폐암을 일으키는 인체발암물질로 규정했다. 디젤 하면 대형차의 뒷 꽁무니에서 나오는 시커먼 매연이 연상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그럴 법한 결정이지만 연비 좋은 고급수입차가 연상되는 사람들은 좀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다.
이번 결정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계보건기구에서 발암물질을 분류하는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의 국제암연구소에서는 다양한 환경요인에 대해 발암 가능성을 평가하여 등급을 매기고 있다. 동물실험에서 암을 유발한다는 것이 입증되고 사람을 대상으로 수행한 역학연구에서도 발암성이 확인된 물질을 인체발암물질(Group 1)로 분류하는데 석면, 벤젠, 방사선 등이 여기에 속한다. 동물실험에서는 발암성의 증거가 충분하지만 사람에서는 발암성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는 인체발암추정물질(Group 2A), 이 보다 증거가 더 부족하면 인체발암가능물질(Group 2B)이 된다.
국제암연구소에서는 20여 년 전에도 디젤배기가스의 발암성을 평가했는데 그 때는 발암성이 동물실험에서는 확인되었지만 사람에서 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못해 인체발암추정물질로 판정했었다. 올해 들어 디젤배기가스의 발암성에 대한 역학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자 디젤배기가스의 발암성을 재평가하여 추정물질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인체발암물질로 상향 분류한 것이다. 디젤배기가스가 인체발암물질로 규정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12,000 여명의 미국 광산근로자들을 장기간 추적 관찰한 역학연구결과들이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디젤배기가스에 노출된 근로자를 추적조사해보니 노출량에 비례해서 폐암 발생 위험이 높아졌고 가장 많이 노출된 근로자들은 무려 7배까지 폐암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으로 디젤배기가스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그러나 배기가스에 대한 규제가 없었던 수십 년 전에 광산이라는 특수한 작업조건에서 노출된 사람에서 발생한 상황을 오늘날의 일반 환경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도 과거에 비해 디젤엔진의 기술이 크게 개선되었다. 과거의 디젤엔진에서 내뿜던 매연은 매연여과장치(DPF; Disel Particulate Filter)를 통해서 98% 이상 포집되어 제거되고 이산화질소도 촉매장치를 통해 상당부분 제거된다. 디젤엔진에서 발생한 오염물질들이 다양한 후처리장치를 통과한 후 대기 중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이전의 디젤엔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물질의 배출량이 감소한 것이다. 배기가스의 처리기술 발전에 따라 경유자동차의 배출허용기준도 유로-3부터 시작하여 현재는 유럽과 같은 유로-5 수준이 적용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배출허용기준 강화를 가능하게 하고 배출허용기준의 강화가 기술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디젤 엔진은 연비가 뛰어난데 오염물질의 양을 대폭적으로 개선한 후처리기술과 결합되면서 요즘에는 클린디젤(Clean disel)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디젤엔진의 배기가스 배출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고 해서 세계보건기구의 이번 결정을 우리와는 무관한 흘러 간 옛 노래 쯤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만만치가 않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후처리장치를 장착하지 않는 수많은 노후 경유차들이 운행되고 있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수도권대기환경개선대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노후 경유차에 후처리장치를 부착하거나, LPG(액화석유가스; Liquefied Petroleum Gas) 차량으로 개조하거나, 조기폐차를 유도하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고 상당부분 성과도 있었으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이전에 등록된 전체 노후 경유차의 20% 남짓만이 후처리장치를 부착하였다. 지난 10년간 수도권의 대기 중에 미세먼지(PM10)의 농도는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이산화질소의 농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도 경유차 대책의 부분적인 성공을 반영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 생산된 경유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보건기구의 이번 결정으로 암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클린디젤이라고 해서 공기를 맑게 하는 것은 아니고 운행하는 만큼 공기를 오염시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게다가 경유 차량이 실제 운행 시에는 인증조건보다 훨씬 많은 이산화질소를 배출한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노후 경유 차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부의 경유차 대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후처리장치를 장착하거나 조기폐차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경유 차량에 대한 대책을 보다 확고한 정책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발암디젤을 클린디젤로 바꾸는 것이 이번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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